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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 닫게 생겼다는 영세상인들의 추석 |
추석 연휴 인천공항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썰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민들은 비싼 물가 탓에 좀처럼 지갑을 열지 못했고 상인들은 대목이 실종돼 한숨이 늘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인다고 하나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끝 모를 바닥이어서 양극화를 더욱 실감하게 만든 추석이었다.
정부는 경기 흐름이 나아졌다며 올 하반기 3%대, 연간 경제성장률 2.7%를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역 돌아다니면 옛날 같으면 국회의원들 싸우지 말라고 하던 분들이 요즘은 우리 문 닫게 생겼다고 글썽이며 하소연한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출범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우원식 의원이 전한 한가위 서민경제의 실상이다. 실제로 시장경영진흥원이 조사한 8월 전통시장 상인들의 경기 체감지수는 41.6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표물가 상승률은 올 상반기 1.3%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체감물가는 5.4%로 4배 이상이었다.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전월세난까지 겹쳐 서민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을지로위원회가 지난 몇달간 대리점주, 택배노동자, 대리기사 등 을들을 만난 결과 서민들의 위기는 단순히 경기 부침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우월적 지위의 갑이 횡포에 가까운 불공정 계약을 통해 힘없는 노동자나 유통망에 참여하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게 문제라고 한다. 수탈을 통한 부의 증식이 우리 사회의 경제질서같이 돼 있다는, 섬뜩하지만 더없이 생생한 고발이다.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가 역대 최고인 400조원을 넘는 수준인데 국민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임시일용직, 영세자영업자들의 주머니는 텅텅 비는 이유를 이보다 더 명확히 짚을 수 있을까 싶다.
불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잡고 서민경제의 숨통을 틔우자는 게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기업을 옥좨서는 안 된다고 하고 경제 관료들은 경제민주화는 할 만큼 했으며 경제활성화를 할 때라고 한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도 바닥에선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는데, 벌써 경제민주화가 끝났다는 건 공약 파기일 뿐 아니라 민생에 눈을 감는 일이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와 배치되는 게 아니며 장기적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정치권은 민생을 살피고 경제민주화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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