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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갑작스런 ‘이산가족 상봉 연기’ 안 된다 |
북한이 갑자기 오는 25일 금강산에서 시작될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다고 21일 밝혔다. 어떤 이유로든 인도적 사안을 볼모로 잡는 것은 잘못이다. 북한은 상봉 행사가 예정대로 이뤄지도록 하기 바란다.
북쪽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쪽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소동’ ‘전쟁연습 소동과 무력증강 책동’ ‘내란음모 사건’ 등을 거론하며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상봉 행사를 연기한다’고 말했다. 조평통의 이런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북쪽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최근 ‘북한의 4세대 전쟁 획책’ 발언과 얼마 전 끝난 한-미 군사훈련 등을 ‘대결소동’ 따위로 표현한 듯한데, 이는 이산가족 상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북쪽이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을 남쪽 당국이 원칙론의 결실이라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난한 것 역시 자의적이다. 특히 북쪽이 내란음모 사건을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연결시킨 것은 자신이 그동안 주장해온 ‘내정간섭 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
북쪽이 최근의 여러 일과 관련해 불만을 가졌을 수는 있다. 한국과 미국은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9·19공동성명 8주년 기념 반관반민(1.5트랙) 회의’와 19일 미-중 외무장관 회의 등에서 6자회담 재개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북쪽으로선 남북관계 개선을 발판 삼아 6자회담 재개로 나가려는 전략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북쪽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이 훨씬 많이 양보했다는 인식을 보여왔다. 특히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서 남쪽 당국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북쪽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왔다. 그렇더라도 이산가족 상봉 연기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나이 많은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즉각 북쪽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쪽의 진의가 그동안 논란이 돼온 남쪽 이산가족 상봉자의 숙소 또는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 대한 불만 등에 있다면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만약 북쪽이 남쪽의 전반적인 북한 관련 정책을 이산가족 상봉과 연결시키려 한다면 양쪽을 분리시키도록 설득해야 한다. 정부가 사태를 방관하거나 북쪽과 같은 강경한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지기 쉽다.
북쪽은 앞서 개성공단 사태에서 봤듯이 일방적인 조처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경우 나라 안팎의 대북 여론은 더 악화할 것이다. 북쪽은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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