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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락가락하다 무산된 차기전투기 사업 |
정부가 2007년부터 꼼꼼하게 준비해왔다고 자부했던 차기전투기(FX) 사업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24일 회의를 열어 방위사업청이 단독으로 상정한 ‘F-15SE 차기전투기 기종 선정안’을 부결시켰다. 이로써 단일 무기 도입 사상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8조3000억원)인 제3차 차기전투기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019년 이후 100대 이상의 노후 전투기가 퇴역함으로써 생길 전력 공백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벌인 사업이 안보 공백을 초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쳐 본격적으로 진행된 차기전투기 사업은 오락가락, 무책임 행정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해 1월 사업 제안 요청서를 배부할 때는 사업 규모를 책정 예산의 20% 범위(최대 9조7000억원)까지 늘릴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예산을 늘릴 수 없고, 늘린다면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첫 제안서를 믿고 사업에 참여하던 록히드마틴의 F-35A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유로파이터가 도입 대수 60대와 총예산 8조3000억원의 조합을 맞추지 못하면서 자동탈락하고, 최고 성능이 아닌 보잉의 F-15SE가 단독으로 상정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군이 애초 강력하게 주장했던 스텔스 기능의 기준을 약화한 것도 사업의 혼란을 자초하는 원인이 됐다.
방사청은 관련 기관과 협의해 전투기 소요 수정과 총사업비 조정 등을 통해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신속하게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아무리 빨라도 1~2년의 공백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사업 유찰로 인한 국제신용의 하락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을 애초부터 주먹구구로 설계하고 기획·집행한 관련자들을 가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먼저 사업의 명확한 목표와 일정, 예산을 정한 뒤 사업을 재추진해야 할 것이다. 가는 길이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는 잘못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매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대외 무기 종속을 가속화하는 전투기 도입 사업을 언제까지 종료하고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혀야 한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도움이 안 되는 외국산 전투기 도입은 ‘세금 먹는 하마’ 신세를 벗어날 수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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