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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채동욱 찍어내기’ 권·언 합작에 들러리 선 법무부 |
법무부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과 관련해 27일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진술이나 자료가 확보됐다”며 대통령에게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 법무부 대변인은 “혼외아들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건 아니”라면서도 “여러 정황과 검찰의 조속한 정상화 필요성, 채 총장이 진상 규명에 협조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렇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권력의 눈 밖에 난 검찰총장이라도 확실한 물증도 없이 의심스런 정황만으로 쫓아내겠다는 것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청와대의 사표 수리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권력과 언론이 합작한 ‘채동욱 찍어내기’는 일단 성공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달 초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시작돼 채 총장이 사표를 내고 법무부가 ‘진상 규명’을 진행하기까지 박근혜 정권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무리수를 강행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채 총장은 의혹을 부인한 채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필요하면 유전자 검사까지 받겠다며 변호사를 선임해 조선일보 쪽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사자가 진상 규명을 위한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밝힌 이상 조금만 기다리면 진위가 가려질 참이었다. 그런데 돌연 법무부가 끼어들어 사실상의 감찰 의사를 밝히며 사퇴를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자리를 유지하는 건 조직 생리상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래 놓고 검사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청와대는 사표 수리를 보류했고 법무부는 ‘핑곗거리’를 찾아나선 것이다.
법무부가 ‘진상 규명’ 결과라며 일부 사실을 인용해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 것도 논리의 비약이다. 문제의 임아무개씨가 고검장 시절 부인을 칭하며 사무실을 방문해 ‘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하고, 언론 보도 직전 집을 나가 잠적했다는 등의 내용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당사자가 편지를 통해 혼외아들설을 부인한 것에 비춰보면 이런 정도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위해 서둘러 진상규명 절차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력의 주문에 따라 현직 검찰총장에게 ‘파렴치범’이란 올가미를 씌우고 모욕을 주어 쫓아내는 게 과연 검찰의 신뢰를 되찾는 길인지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
채 총장 사표가 수리되더라도 청와대와 국정원, 언론이 불법적인 수단까지 총동원해 ‘채동욱 찍어내기’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은 이와 별개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도 유사한 불법공작이 횡행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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