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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보조출연자 착취, 방송사가 막아야 |
<한겨레>가 연재중인 기획기사 ‘엑스트라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을 보면, 드라마의 소품 취급을 당하는 보조출연자들의 서글픔이 절절이 녹아나온다. 한 시간에 5천원을 받기 위해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야 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기획사 반장들의 욕설과 반말을 들어야 한다. 몸을 쓰는 일이라 밥심이 중요한데도 기획사는 보조출연자의 밥값을 떼먹는 게 오랜 관행이다. 일을 하다 다쳐도 일거리를 잃을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치료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보조출연자들의 삶은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4~6월 보조출연자 400명을 대상으로 연간 소득을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약 70%가 6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화려한 드라마의 조명 뒤편에 엑스트라들의 슬픔과 눈물이라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열악한 처우는 사실 몇 가지 작은 제도 개선만으로도 향상될 수 있다. 우선 임금만 해도 구체적인 임금명세서 작성을 의무화하면 된다. 지금은 날짜, 드라마 이름, 임금 등 아주 초보적인 내용만 들어가는 계약서를 쓰고 있으나, 계약 내용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대기 시간, 숙박비, 식대 지급방식 등까지 모두 적도록 하면 보조출연자들의 권익과 처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업재해의 경우도 피해자뿐만 아니라 기획사나 제작사가 함께 신청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엄격히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보조출연자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산재 신청을 기피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
이런 규정들은 예술인복지법을 개정함으로써 담을 수 있다. 작가 최고은씨의 사망을 계기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중이지만, 업무상 재해 보호와 예술인복지재단 설립 등 제한적 내용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보조출연자를 포함한 예술인을 근로자로 보는 근로자 의제를 분명히 하고 예술인도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도록 이 법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사의 인식과 태도의 획기적인 변화다. 방송사는 제작사-기획사-보조출연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위치해 있다. 방송사들이 제작사·기획사를 감독하면서 임금은 제대로 주고 있는지, 밥값은 떼먹지 않는지, 사고의 위험성은 없는지를 감독한다면 제작사와 기획사 등이 감히 횡포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사가 보조출연자를 엄연한 방송의 주체로 대접해야 한다. 화려한 드라마의 이면에 사람을 착취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한 ‘한류’의 생명력도 금세 고갈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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