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8.29 21:36 수정 : 2005.08.29 21:36

사설

어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사전에 실릴 예정자 3090명을 발표했다. 편찬위가 발족한 것은 2001년이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사전편찬 작업을 추진한 것은 1999년이었으니 7년 만의 첫 열매다. 이미 60년 전에 이뤘어야 할 일의 바탕 정리를 이제야 마친 셈이다.

이 작업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해야 마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정하고 그 근거를 밝히는 일은 우리의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사전에 실릴 인물은 그 불명예를 씻을 길이 없다. 따라서 그 책임은 민간이 맡기에 너무 크다. 민간에 맡긴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광복과 함께 우리의 발목엔 두 개의 덫이 걸렸다. 하나는 분단이고, 다른 하나는 친일청산 실패였다. 덫에 걸린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민주주의의 성장도 불가능했다. 분단은 한반도를 이데올로기의 전장으로 만들었다. 친일 부역자들은 이를 지렛대 삼아 미 군정과 결탁해 남쪽 사회의 지배그룹으로 등장했다. 정부 출범 이후 이들은 반공을 앞세워 항일독립운동 세력을 억압하고, 정적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총독부 고급관료나 경찰, 일군 장교, 판검사를 역임했던 인물들이 광복 후 대통령 1명, 총리 2명, 대법원장 3명 그리고 장관직엔 무려 20명이나 올랐다는 사실은 이를 잘 반영한다. 이들은 나아가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에게 군사독재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심지어 전두환과 신군부의 후원자 노릇까지 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했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친일진상 규명이 제자리만 맴돈 것은 친일파들이 지난 60년 동안 우리 사회에 내린 깊고도 넓은 뿌리 때문이었다. 이른바 거대 언론이라고 불리는 조선·중앙·동아일보사 창업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을 추진한 현 정부 아래서도 2004년 4월 정부가 제출한 친일진상규명법이 여야 일부의 사보타주로 누더기가 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발효되기 직전인 그해 7월 열린우리당이 법안을 재개정해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이 발표된 지금 우리 모두 확인할 게 있다. 이 작업이 특정집단을 단죄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증오와 단죄만으로는 과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의 복원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큰 목표가 있다. 진실 왜곡으로 인해 생긴 갈등과 불화를 치유하는 데도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역사 복원은 해원과 미래의 비상을 위한 것임을 확인하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것에 대해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박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이 제 일을 대신하는 편찬위의 활동을 지원해주기를 기대한다. 국민이 그것을 바랄 것이니 말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