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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누리당, 사법부까지 길들이려 하는가 |
새누리당이 서울중앙지법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무죄판결을 거세게 성토하고 나섰다. 10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상식에도 맞지 않고 민주주의 기본원리도 저버린 해괴한 판결” “국가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심각한 사안” 등 각종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심재철 최고위원은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부장판사 이름까지 거론하며 “잘못된 판결이 상급심에서 당연히 바로잡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무죄판결의 뼈대는 ‘정당의 당내 경선을 직접투표로 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없고, 당시 통합진보당이 대리투표 가능성을 알고도 조처하지 않았던 만큼 업무방해로 보기 어렵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판결이 법리적으로 옳은지를 두고는 양론이 있을 수 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지방법원들이 유죄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앞으로 상급심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이번 판결이 새누리당한테는 몹시 못마땅하고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권이 사법부의 판결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백 보를 양보해 판결에 대한 논평을 내놓는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집권여당 수뇌부가 벌떼처럼 나서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부장판사의 실명까지 들먹이며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엄격한 삼권분립의 원칙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당위적 명제일 뿐, 현행 사법부 인사 구조상 고위 법관들일수록 권력을 의식하는 분위기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특정 판결을 집중 성토하고 나선 것의 폐해는 심각하다. 일차적으로는 통합진보당 무죄판결을 상급심에서 확실히 뒤집으라는 공개적인 압력 행사요,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선언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여당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권력에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집단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사법부가 시시때때로 결기있는 판결을 통해 권력에 제동을 걸어오고 있는데 여권은 그것마저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과거에도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사법부를 공격했다. 때로는 판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에다 색깔론까지 펼치며 사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통합진보당 무죄판결 이후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 그런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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