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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객 정보 제멋대로 들여다본 신한은행 |
신한은행이 2010년 이른바 ‘신한사태’ 때 고객 정보를 마구잡이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반인은 물론 여야 국회의원, 전직 검찰총장에 더해 금융감독기구 고위 인사까지 조회 대상이 됐다. 당시 신한은행은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이 내분을 겪었는데, 라 회장 쪽에서 본점 감사부를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한다. 어떤 경위든 고객 정보 보호가 생명인 금융기관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멋대로 뒷조사를 한 것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16일 민주당 김기식 의원에 따르면, 신한은행 감사부 직원들이 2010년 4월부터 상당기간 고객 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전산 기록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신 사장의 비위를 찾기 위해 그와 가깝거나 거래를 한 인물을 죄다 훑은 것으로 보인다. 조회 정보는 계좌 사용 내용부터 환전 내용, 신용카드 거래 내용뿐만 아니라 영업점 상담 내용 등 금융거래 정보 외에 가족관계 등 비금융거래 정보까지 망라됐다고 한다. 당사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영업 목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정보보호법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믿고 맡긴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거래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신한은행은 라응찬 전 회장이 차명계좌를 운용하며 비자금을 만들고 자사주를 매매하는가 하면 우회증여까지 해서 충격을 준 바 있다. 누구보다도 규정에 충실해야 할 은행 최고경영자가 금융거래 질서를 떠받치는 기둥과 같은 금융실명제법을 우습게 알고 은행을 사금고처럼 운용했기 때문이다. 실명제법 위반도 위중한 일이지만 고객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은 더욱 심각하다.
신한사태는 지난 2010년 4연임에 성공한 라응찬 회장이 차명계좌 문제가 불거지자 신상훈 사장을 고소하며 내몰기에 나섬으로써 표면화됐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갖 비리와 불법이 터져 나온 신한사태 전후로 감독당국이 보여준 태도는 더욱 놀랍다. 라 전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차명계좌에서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50억원을 건네 구린내가 진동했지만 4연임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감독당국이나 사정당국은 수십개의 차명계좌 가운데 재일동포 4명의 계좌만 문제 삼는 등 상당기간 라응찬 감싸기에 급급했다.
선도은행이라고 하는 금융기관에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일차적 원인은 재벌그룹처럼 내부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감독당국의 부실한 감독 탓도 크다. 은행과 감독당국이 근본적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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