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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7 18:42 수정 : 2013.10.18 08:46

밀양 송전탑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신고리 원전 3·4호기에 들어간 제어케이블이 성능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원전 가동이 적어도 2년 늦춰지게 됐다고 한다. 내년 여름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서라는 송전탑 건설 강행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면 마찰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주민대책위의 요구를 수용해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민주적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내년 8월 원전 가동 일정에 맞춰야 한다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으나, 성능시험에서 떨어진 제어케이블을 철거하고 안전성이 입증된 새것으로 바꾸는 작업에는 2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제어케이블은 고온이나 고압 등 이상 상황에서도 제어실의 동작 신호와 원전 현장의 주요 데이터를 전달하는 핵심 부품이다. 위조된 부품이 추가로 밝혀지거나 새로 교체한 제어케이블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전 가동 시기는 더 늦춰질 수도 있다. 두 원전의 가동은 일러야 2015년 말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주민대책위는 제어케이블이 성능시험에서 불합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황증거를 제시하고, 시험 기간에 공사를 중단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나 한전 어느 쪽도 귀 기울이지 않고 공사의 절박성만 주장했다. 그런데 제어케이블은 본고사는 치르지도 못하고 예비고사에서 떨어져버렸다. 객관적 검증이 필요한 기술적인 측면에서 주민대책위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누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지 확인된 것이다.

밀양 사태로 나이 든 주민들이 경찰과 충돌해 부상을 입는 등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송전탑 갈등은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잠재해 있다. 근본 원인은 한전이 가장 힘없는 마을에, 가장 손쉽게,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서 송전선로를 긋고 주민들은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데 있다. 유신 말기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에는 사업계획 수립에서 추진, 보상 대책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민주성과 투명성, 객관적 검증을 담보하는 규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양 사태는 약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돼온 구시대적 전원사업이 이제는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은 송전설비의 경제적·기술적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도출해내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정부와 한전은 공사를 강행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사회적 비용을 줄이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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