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4 20:32
수정 : 2005.01.24 20:32
돌아보면 제 순간에 말하지 못해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다. 내게 두 가지 장면이 있는데 점점 생각이 깊어진다.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 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농업고등학교 수업 장면을 보니 우습더라는 말이었다. “이만큼 땅을 파고 이만큼 씨를 뿌리고, 이만큼 흙을 덮고 물을 뿌린다더라”는 말의 요지는 그렇게 적당히 답도 없이, 슬렁슬렁 하니 농촌이 가난하다는 비판이었다. 그 말에, 미리 밭갈이를 마치고 비가 오길 기다려 비를 맞으며 고구마 순을 놓는 시골 아낙들의 모습, 일기예보가 정확하지만은 않던 시절에도 바람에 묻은 비의 냄새를 맡으며 씨를 뿌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서 자연의 힘으로 하는 농사일이니 교과서로만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만 빨개지고 말았다.
얼마 전 미처 다 팔지 못해 밭을 갈아엎으려는 이웃마을의 배추로 늦은 김장을 할 때, 김치냉장고 덕에 김장철에도 채소가 헐값이라는 아주머니들의 한탄을 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쭉정이가 반이 넘는 벼를 베는 흉악한 꿈을 꾸었노라고 하자, 한 분은 모내기철에 비가 오지 않아 모를 절반밖에 심지 못한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올해는 가물어 농사짓기가 힘들려나 보다’ 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이들에게 비에 대한 예지 능력이 생겼을까? 슬렁슬렁 대강 산 삶은 아닐 것이다.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농사짓는 이의 마음자리가 이러한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 다른 이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는가 보다. 교사의 일과 가르치는 일도 그러할 듯싶다.
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맞은 방학 때의 일이다. 서울 유수의 한 연구소에 근무하는 석박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방학이 있어 참 좋겠노라고, 쉬면서도 월급 받고 하는 운운에 나는 불공정한 대우라도 받은 사람처럼 할 말이 없었다. 바쁘고, 정신없이 지난 1학기를 마친 달콤한 휴식이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교사인 친구의 어머니는 종이접기 교실에 다니는 것이 유일한 방학일과라는 말은 좌중의 실소로 이어졌고, 저마다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모았다.
지금은 방학 동안의 연수로 새로이 거듭나는 선배 교사들에게 배우며, 짧게는 십일, 길게는 이삼십일씩 다양한 연수에 참여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고, 휴식과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으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이번 연수과정에는 교사가 된 제자와 그의 스승이 한 강의실에서 만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르치며 배우는 교사의 자리를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50대에도 종이접기를 배운다는 여교사는 아마도 방학 때마다 쉬지만은 않았으리라. 누구나 할 수 있고 쉬운 것이라 여기는 종이접기 하나도 우리 아이들과의 활동에서 단순한 종이접기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가장 유의미한 활동으로 만들어가는 이가 교사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새학기를 준비하면서, 남들은 농사나라고 쉬이 말하는 일을 온몸으로 온 정성으로 다하는 농부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교사의 마음자리를 만들어 가고 싶다.
신의경/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교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