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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모순투성이의 일본 집단자위권 용인론 |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때 “한반도와 한국의 주권 행사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 한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부는 그간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움직임에 대해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과거 역사로부터 기인하는 주변국들의 의구심과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는 기본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김 실장의 발언은 집단자위권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반대에서 사실상 용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걸 보여준다. 미·일이 이미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기로 합의했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를 지지하는 대세를 의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는 이해하지 못할 점이 많다. 우선, ‘한반도와 한국의 주권에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는 집단자위권 행사와 전혀 무관한 일이다. 다른 나라 군대가 우리 영토나 영해에 들어올 때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고유 권리다. 이를 마치 집단자위권 행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 대단한 장치라도 되는 양 말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런 우리 입장을 미국에 전달한 것도 문제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했다고 해도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는 일본이다. 아무리 미국의 힘이 강하다 하더라도 집단자위권 행사의 주체인 일본에 직접 우리 의견을 말하지 않고 미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사실상 영구적으로 행사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전시에나 일어날 자위대의 우리 영토·영해 진입에 대해 우리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일본의 자위대가 유사시 우리 영토나 영해에서 작전을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우리가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작권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외교·안보의 큰 그림 없이 이런 문제에 즉흥적으로 대응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그 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한-미-일 미사일방어, 한-미-일 군사동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나 북핵 문제 해결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문제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대응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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