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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격의료, 제대로 된 시범사업부터 먼저 해야 |
보건복지부는 29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격의료는 섬이나 산골에 살아 제때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들도 집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편리할 것이다. 온 국민이 스마트폰이 있다시피 한 정보기술 강국이니 발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면에 적잖은 문제점이 도사린 것도 사실이다. 첫째 우려는 안전성이다. 원격진료는 통신망을 타고 전달되는 수치만으로 의사의 판단이 이뤄진다. 그러나 진단은 환자 상태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필요로 한다. 원격의료로 대면치료를 대체할 경우 합병증 및 부수 질환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숫자로 나타난 병만 치료하다, 속병을 키워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둘째는 비용 부담이다.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환자와 의사를 연결해줄 단말기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시중에서 팔리는 간단한 혈당측정기 하나도 10만원 안팎이다. 원격의료를 위한 인프라를 깔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고스란히 국민건강보험이 떠맡아야 한다면 가뜩이나 재정 상태가 취약한 건강보험은 허리가 휘청거릴 것이다.
셋째는 의료계의 생태계가 파괴될 위험성이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심한데, 원격의료가 이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복지부는 원격의료를 ‘동네의원’으로 한정한다고 하지만, 대형병원까지 허용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게 의사들의 판단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은 에스케이텔레콤과 ‘헬스커넥트’라는 합작회사를 만드는 등 대형병원들이 이른바 유(U)헬스 산업에 뛰어든 게 현실이다. 시골마을의 병원들은 그나마 지리적 접근성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는데, 원격의료는 이들의 존립 근거마저 빼앗아버리고 그 때문에 더욱 대형병원의 원격의료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니 원격의료는 최대한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현재 30개 정도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와 평가는 아직 없다. 현재의 시범사업이 부족하다면 그 규모와 대상을 늘려서라도 제대로 된 시범사업을 먼저 벌이고, 환자단체와 지역 주민, 의료진, 관련 업체 전문가들이 참여해 냉정한 평가를 내린 뒤 새 제도를 도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원격의료 제도를 국민들에게 바로 투약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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