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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미화’ 이어 이젠 5·18 왜곡해도 면죄부 주나 |
인터넷에 5·18 민주항쟁을 북한군 특수부대의 지시·조종 아래 이뤄진 폭동으로 묘사해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전사모’(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황아무개씨 등 10명에게 법원이 30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5·18 항쟁에 대한 이들의 주장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황당한 주장에 면죄부를 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구지법 윤권원 판사가 이날 무죄 근거로 든 것은 두 가지다. 5·18 항쟁의 발생 배경과 경과 등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가 이미 확립된 상태여서 이 사건 글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렵다는 게 하나다. 또 글 내용이 5·18 민주유공자나 항쟁 참가자 집단에 대한 비난이어서 원고 개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윤 판사는 “4천명이 넘는 5·18 민주유공자에다 일반 참가자까지 포함하면 이 글을 개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도 밝혔다.
물론 5·18 항쟁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는 명백한 사실로 정립돼 있긴 하다. 그러나 지난 5월 종편들의 왜곡보도 소동에서 보듯이 일부 세력이 특정 목적 아래 이를 뒤흔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당시 상황을 왜곡하는 글들이 버젓이 떠 있고, 일부 카페들이 조직적으로 유사한 글을 게시하거나 퍼나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왜곡보도에 대한 징계 심의를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에 출석한 종편 책임자가 “북한군이 광주에 투입되지 않았다는 근거는 있느냐”고 반문하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마도 이번 판결은 지난해 12월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취지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씨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 “북한의 특수군이 작전지휘” 등의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이 이번 판결과 동일한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님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등 황당한 내용이 인터넷에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면 대법원이 얼마나 안이하게 판단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유신 때가 더 좋았다”는 등 민주화 이후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까지 뒤엎는 판에 5·18 항쟁까지 왜곡하는 걸 ‘사회적 평가가 바뀌기 어렵다’는 말로 용인한다면 우리 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대법원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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