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케이티, 후진적 ‘최고경영자 리스크’ 고리 끊어야 |
이석채 케이티 회장이 3일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했다. 이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심경 변화에 검찰 수사 등 외압이 작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검찰이 배임 혐의로 케이티 본사와 이 회장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 강도를 높이던 차였다. 남중수 전 사장이 검찰 수사로 중도 낙마한 데 이어 또다시 최고경영자가 불명예 퇴진하는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선임 절차로 후임자를 뽑아 정권 향배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왔다갔다하는 후진적 ‘최고경영자 리스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 회장은 취임 초기에 케이티와 케이티에프의 합병, 아이폰 도입 등을 밀어붙이며 개혁 전도사를 자처했지만 해가 갈수록 독선적 의사결정과 측근 중심의 경영 방식으로 기업 소유주가 있는 회사보다 더하다는 비난을 샀다. 참여연대와 언론노조 등 시민단체는 지난 2월 이 회장이 여러 사업을 벌이면서 친인척이 관계된 회사에 투자하고 회사에 수백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 회장은 회사의 부동산을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정감사에선 수천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무궁화 위성을 수십억원에 외국 업체에 넘긴 점도 의혹으로 제기됐다. 물론 이 회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 수사로 진실을 밝혀야 할 대목이다. 이 회장의 사퇴가 배임 횡령 의혹의 면죄부가 될 수 없는 만큼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 회장이 이사회 의장, 사장 등 핵심 요직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채우고, 정치권 인사를 마구잡이로 영입해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됐거나 과거 정보기관에서 불법행위를 한 사람들에게까지 급여를 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케이티는 1급수라는 이 회장의 장담대로 배임 횡령 혐의가 없다고 해도 민영화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저만치 후퇴시킨 점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오죽하면 케이티가 정권과 관련된 정·관계 인사를 대거 임원으로 영입해 낙하산 인사의 집합소라는 오명을 얻었겠는가.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케이티의 회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소유주가 좌지우지하는 재벌이나 정권에서 낙점하는 공기업과는 다른 선진적 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할 귀중한 책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민영화한 공기업마저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 정권에 줄댄 인물을 낙점해 좌지우지하려는 권력의 습성을 이번에는 뜯어고쳐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