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31 21:43
수정 : 2005.08.31 21:43
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발언 강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연정론과 관련해 “권력을 통째로 넘기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등의 놀라운 발언에 이어 마침내 ‘2선 후퇴’ ‘임기단축’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청와대 간담회에 참석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보인 ‘충격적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답답하다’ ‘황당하다’는 반응은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이 느끼는 정서이기도 하다. 물론 노 대통령의 이런 말에는 ‘정치구조와 정치문화의 혁신’이라는 분명한 전제조건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진짜로 대통령이 중도하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이 연정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종교적 신념과 열정에 불타는 예언자나 선지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자신의 판단이 절대 틀릴 수 없다는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에 가득차 있다. 그 사이에는 여당 의원들의 뜻이나 일반 국민의 판단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 정치인이나 국민은 다만 설교를 통해 자신의 숭고한 뜻을 이해시키고 교화시킬 ‘수준낮은 학생’일 뿐이다. 정치지도자가 현실세계의 굳건한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속세를 벗어난 예언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노 대통령은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 선택의 경력으로 치자면 내가 세계 최고의 원로적 경지에 있다”는 말도 했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노 대통령을 오늘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은 패배를 감수하면서도 온몸으로 지역주의의 벽에 부닥친 패기, 그리고 주변의 예상을 뛰어넘는 절묘한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문제는 노 대통령이 과거와 현재를 동일시하면서 계속 똑같은 벼랑끝 전술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은 역사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국민의 뜻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역사의 승리였고 국민의 승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대통령이 ‘희생과 결단’을 이야기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정치문화 혁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과연 다른 모든 개혁과제를 포기한 채 대통령직을 걸 정도로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과제인지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게다가 당시 노 대통령은 혼자 몸이어서 ‘떨어지면 그만’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결코 ‘안 되면 말고’ 식의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치권에 바란다. 노 대통령의 연정론 발언과는 상관없이 선거구제 개편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바란다. 정치구조의 외형적 변화가 결코 지역구도 해소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어쨌든 개선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마음을 비우고 제도 개선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 그것이 그나마 더 큰 국가적 불행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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