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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관광진흥법 개정 요구 그만해야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관광진흥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법안이 관광객 1000만명 시대에 숙소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재벌에 대한 특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한항공은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였던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터를 2008년 사들인 뒤 지속적으로 관광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근처에는 풍문여고 등 학교가 3개나 있어 서울 중부교육청으로부터 ‘불허’ 결정을 받았다. 이후 대한항공은 행정심판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갔지만 모두 졌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건강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교육청 승인 없이 호텔 건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일종의 ‘우회로’를 정부가 앞장서서 깔아준 셈이다. 이 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도 이례적이다. 8월28일 청와대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부터 규제 완화를 건의받은 이후, 9월25일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관련 규제를 고쳐주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10월22일 국무회의에서는 “7성급 호텔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법”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이번이 세번째 언급인 셈이다.
그러나 가장 개탄스러운 건 우리 문화를 돈으로 환산하는 셈법이다. 송현동 일대는 동서로는 경복궁에서 북촌마을 그리고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남북으로는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에 호텔을 세우려는 발상 자체가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이자 역사에 대한 몰지각이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이나 중국의 자금성 바로 코앞에 대형 호텔이 들어서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미 적잖은 전문가들이 이 일대를 도심 명소와 연계해 북촌의 거점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최근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연결해 ‘열린 미술관’이자 도심 속 녹지 공원으로 활용하는 구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일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이날 시정연설에서 밝힌 “우리 문화를 더욱 빛나게 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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