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설] 박 대통령, 정국 해법 정치권에 떠넘기지 말라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으로 1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박 대통령은 30분간의 연설에서 국정의 각 분야를 두루 언급하면서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평화통일 기반 구축 등 4대 국정 기조에 따라 그간 해온 일과 앞으로의 예산 및 법안 처리 과제를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국정 전반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다 보니 마치 공약실천 보고대회의 자화자찬식 연설을 보는 듯했다. 국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 핵심을 짚어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런 연설로는 엉킨 실타래 같은 정국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1년 가까이 논란이 계속돼온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해법은 불투명하다 못해 책임을 전가하는 듯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저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한 점은 일부 진전으로 볼 수 있지만, 잘 뜯어보면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말로 들린다.
대선개입 논란을 해결하는 데 궁극적 책임이 있는 이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당사자일뿐더러 그 이후 현 정부에서 진행된 일련의 진실 은폐 기도들에 대해서도 실질적이고 총체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정치권더러 해결해 보라는 것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의 핵심 주체이면서 마치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듯한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으로는 정국을 풀지 못한다. 야당은 대선개입 사건이 여태껏 해결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데는 여당의 건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 대통령이 요지부동이었던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여야 대표가 자리를 함께한다고 해서 책임 있게 정국 해법을 타결하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이 정국의 핵심을 짚어 책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모호한 발언으로 정치권을 혼란에 빠뜨려서는 곤란하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경제와 민생 해법으로 제시한 내용도 실망스럽다. 서민경제를 위한다면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뤄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제동을 걸어 힘을 뺀 상태에서 경제활성화를 앞세워 규제완화를 하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회복에 대한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경제활성화 법안이 통과되면 수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번 정홍원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에서 말했던 것으로, 부풀려진 수치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이 통과되면 2조3000억원 규모의 합작공장 착공으로 1만4000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지만, 건설 일용직까지 포함한 수치로, 실제 창출되는 일자리는 50여개 수준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민생과 경제를 챙긴다는 핑계로 정치는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은 대통령의 기본 임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핑계로 정작 팔 걷고 나서야 할 일을 뒤로 제쳐놓아선 곤란하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민심이 평화로워야만 민생과 경제도 제대로 풀릴 수 있다.
‘녹음기 시정연설’, 정국 꽁꽁 얼렸다 [#195 성한용의 진단]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