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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제강점기 피살자 명부 발견과 앞으로의 과제 |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3·1운동과 간토(관동)대지진 때 학살된 한국인 희생자 명부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 도쿄의 주일한국대사관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신축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명부들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주소와 생년월일뿐 아니라 살해당한 구체적 정황이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피해와 고통을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유족들이 독립유공자 추가 신청을 하거나 피해 보상을 청구할 때 좋은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록원이 19일 공개한 문서는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 217장, 630명),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1권 109장, 290명),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65권, 22만 9781명) 등 모두 3종 67권이다. 이 문서들은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앞두고 1952년 12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내무부가 전국적 조사를 벌여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작성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일제강점기 피해 자료라는 점에서 당시 피해 상황을 가장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의 발견에 따라 정부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하나는 국내적으로 취할 수 있는 독립유공자 심사와 징병·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조처다. 현재 3·1운동과 관련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순국열사는 391명인데, 이번에 발견된 명부에는 630명의 희생자가 지역별로 적혀 있다. 중복된 명단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 239명이 추가 심사 대상이 되는 셈이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빙자료가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는 피해자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이들 명부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후속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둘째는 이 명부를 근거로 일본에 새롭게 배상 요구를 제기할 것이냐의 문제다. 정부는 2005년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피해 가운데 일본군 군대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등 3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문서를 토대로 3·1운동과 간토대지진 피해를 외교문제로 제기할 것인가는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해 매우 미묘한 문제다. 정부는 이런 사안일수록 국민감정에 휩싸여 섣부르게 대응하기보다 튼실한 자료와 법 논리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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