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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2 19:01 수정 : 2013.11.22 19:01

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조차 그것이 폭력적으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행위가 아닌 이상 허용하는 데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도 말할 자유를 억압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소설가 이외수씨의 천안함 발언 소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언론의 낮은 수준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소동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이씨가 16일 동강 난 천안함이 전시되어 있는 제2함대 사령부에서 군인을 대상으로 군대생활을 격려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그리고 <문화방송>은 이 강연 내용을 녹화해 연말께 자사의 군인 소재 프로그램인 ‘일밤-진짜 사나이’에 내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씨가 이런 내용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고,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이 이를 보고 이씨가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정부 발표를 ‘소설’이란 표현으로 조롱했다며 방송 중지와 사과를 요청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이씨와 하 의원은 몇 차례에 걸쳐 천안함 사건 발표에 대한 신뢰, 하 의원의 병역 미필 문제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공방이 이쯤에서 멈췄다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민주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가 끼어들어 유감을 표시하고, 이어 문화방송이 보수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이씨의 강연 녹화분을 프로그램에서 삭제하기로 하면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수준을 논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로 비화하였다.

먼저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동에 몰매를 들이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과 주한 미 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 같은 사람조차 아직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침되었다는 발표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진실이 과학적 진실과 다를 수 있고, 설사 같더라도 그것을 믿고 안 믿고를 기준 삼아 언행을 제약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이씨는 강연에서 천안함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라 군대생활의 유익함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문화방송이 22일 녹화 삭제 조처를 발표하자, 하 의원은 “상황 종료”라고 승리감을 표시했고, 이씨는 “사살당한 기분”이라고 좌절감을 밝혔다. 결국 하 의원 등의 목적은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씨를 억압하는 데 있었고, 세몰이를 통해 그를 관철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희생시켜 얻은 힘의 승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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