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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능 문제 오류, 이제라도 적절한 조처 취해야 |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 오류 논란이 거센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과 관련해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26일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수험생들이 행정소송 등 집단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전체 입시 일정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문항의 잘못은 명백하다. 평가원은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고 설명한 보기가 정답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나프타 쪽 총생산액 규모가 더 크며, 이 문항의 지도에도 ‘2012’라고 적혀 있다. 이 보기가 정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평가원 쪽은 교과서에 2009년 지도가 나와 있음을 강조하지만, 수험생들은 2012년을 기준연도로 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평가원은 또 “최선을 다했으나 문제가 생겨 유감”이라면서도 “객관식 문항에서는 최선의 답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틀린 보기들도 정도껏 순위를 매겨 답을 골라내야 한다는 궤변이다.
사태를 처리하는 평가원과 교육부의 태도도 무책임하다. 평가원에 이 문항에 대한 이의신청이 처음 들어온 것은 수능 당일인 11월7일이었다. 하지만 평가원은 이의신청 접수 기간인 1주일 동안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다가, 13일 출제위원과 평가원 연구자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소집해 ‘이상 없음’ 판정을 내렸다. 수험생들의 이의 제기가 잇따르는데도 외부 전문가의 사전 자문이나 재심을 거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평가원이 14일 뒤늦게 관련 학회 두 곳에 자문을 한 것은 실무위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요식행위로 보인다. 두 학회가 즉각 ‘출제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보낸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수능 관리를 최종 책임져야 할 교육부는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출제 오류를 인정할 경우 생길 혼란과 책임 문제를 걱정하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비를 분명히 가르고 피해를 보는 수험생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2010학년도 수능 지구과학 과목의 한 문항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된 바 있다. 당시 평가원은 ‘중대 사안’이라고 판단한 뒤 재심 끝에 결정을 내렸고, 수험생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비슷한 사안인 이번 경우와 대비된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세계지리 수험생만도 수만명에 이른다. 물론 채점이 일단 끝난 상황이어서 약간의 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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