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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수장학회 보도 항소심, 공익성 너무 좁게 봤다 |
지난해 대선 직전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비밀회동’을 보도했던 최성진 한겨레신문 기자에 대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1심보다 후퇴했다. 1심보다 형량이 다소 무거워진 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 사안이 기자로서 보도할 수밖에 없는 ‘공익성’을 갖느냐에 대해 재판부가 그 의미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다.
지난해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은 문화방송 주식을 팔아 대학생 반값등록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극비 추진하려 했다. 이를 취재한 최 기자의 기사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초미의 관심사이던 정수장학회 문제를 알린 것이다. 한국신문협회 등 여러 언론 관련 단체들이 최 기자에게 최고의 언론상을 수여하는 등 주목할 만한 특종기사로 평가한 것은 이 보도의 공익성을 말해주는 생생한 증거들이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이러한 내용들이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에 불과하고…매각에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점”과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언론보도 역시 예상되는 점” 등을 들어 반드시 긴급하게 보도해야 할 사안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지원은 지난 대선 기간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고, 그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민심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또 이런 방안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예상되는 것까지 고려해서 보도 기준을 삼으라고 하는 건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에 기대할 수 없는 주문이다. 무엇보다도 정수장학회가 반값등록금 지원을 독자적으로 판단해 발표하는 것과, 이 과정에 문화방송 관계자들이 개입해 기획이 이뤄졌다는 점은 차원이 다른 성격이다.
재판부는 최 기자가 법 위반을 피해갈 ‘기대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현직 기자 3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최 기자와 같은 입장이 될 경우) 기사화하겠다’는 응답이 69%로 압도적이었고 ‘기사화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4%에 그쳤다. 그런데도 2심 재판부는 최 기자가 “최필립에게 전화가 끊기지 않았다는 걸 고지하거나, 대화를 들어도 괜찮으냐고 물어봤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사안’의 보도를 회피하는 언론인은 언론인이라 부를 수 없다. 또 ‘공적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인에게 제약을 가하는 행위는 이유야 어떻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유감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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