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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정성 확보 없는 KBS 수신료 인상 안 된다 |
<한국방송>(KBS) 이사회가 10일 여당 추천 이사 단독으로 임시이사회를 열어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했다.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발전 종합계획’에서 수신료 현실화를 정책과제로 제시한 직후에 이사회를 열어 이런 결정을 한 점으로 보아, 정부와 여당 쪽 이사들 사이에는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런 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한국방송 쪽은 이사회의 일방적 수신료 인상 결정이 나온 뒤 언론사를 비롯한 각계를 대상으로 대대적 여론공세와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한국방송의 주 재원인 수신료 비중이 현재 37%에 불과해 공영방송의 기본적 책무를 수행하기도 어렵다는 점, 이번의 수신료 인상으로 비로소 수신료 비중이 53%로 증가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 설명하고 있다. 물론 한국방송 쪽의 말에도 일리 있는 부분이 있다. 공영방송이 수신료보다 광고에 더 의존한다는 건 문제다. 또 32년간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신료가 2500원으로 동결돼 있다는 사실도 참작할 만하다.
하지만 한국방송의 수신료 인상 주장은 그를 위한 순서를 착각하고 있다는 데 결정적 문제가 있다. 시민사회와 야당 쪽 이사들이 말하는 것은 수신료 인상 반대가 아니라 인상을 위해 방송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외면하고 수신료만 올리면 공정성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처럼 호도한다. 한국방송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장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고 누가 한국방송을 공정한 방송으로 여기겠는가.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애초 8개 국장 직선제를 요구했던 야당 쪽 이사들이 5개 국장 사후평가제로 양보를 했음에도 여당 쪽 이사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상안을 일방처리한 것은 그들에게 공정성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수신료는 이사회에서 통과됐다고 그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방통위 의결과 국회 승인이라는 절차가 남아 있다. 혹시 정부와 한국방송 쪽은 방통위와 국회에서도 수의 우위를 활용해 일사천리로 강행처리하자는 유혹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성 확보 장치 없는 수신료 인상 강행은 방통위와 국회 절차와 관계없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게 뻔하다. ‘제2의 시청료 거부 운동’을 불러오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공정성 확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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