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2 20:02
수정 : 2005.09.02 20:02
사설
서울경찰청은 6·25 전쟁의 성격에 대한 생각과 글을 문제삼아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러 조사했다. 강 교수는 지난 7월 “후삼국 시대에 견훤 궁예 왕건 등이 다같이 통일을 위해 각축했듯이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매체에 기고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7조 찬양 고무죄) 혐의를 두고 있다.
강 교수는 2001년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 위업을 이룩하자”는 만경대 방문록 파문으로 구속됐던 터여서 그 혐의가 무거워 보일 수도 있다. 당국은 방문록 파문의 연장선에서 이 글의 내용을 심판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만경대 소감과 6·25 전쟁 관련 글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개인적인 심경을 토로한 것이지만, 후자는 학자로서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전하는 글이다. 헌법이 정한 ‘학문의 자유’를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학문적 연구 결과물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따지는 게 우선이다. 법의 잣대를 먼저 들이댈 일은 아니다. 특히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온 국가보안법이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안법을 들이대면 공학자마저 이적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구 결과물을 북한에서 활용하면 이적이 된다. 우리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는 불가능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해도 찬양 고무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6·25 전쟁의 성격, 맥아더의 공과 등 논란을 빚는 내용은 법의 도마가 아니라 학문적 토론에 올리는 게 옳다. 거기에서 사실 여부와 해석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그래야 법이 학문 연구를 억압하고 통제한다는 불명예도 피할 수 있다. 학문 연구가 법적으로 심판받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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