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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의 총체적 무능 드러낸 ‘일본군 실탄 차입’ |
전쟁터에 총도 없이 나간다는 말이 있다.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을 비아냥댈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분쟁지역인 남수단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한빛부대가 실탄이 부족해 현지의 일본 육상자위대로부터 소총 실탄 1만발을 지원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군 작전 계획의 수립은 철저한 정보 판단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사안은 기본적으로 우리 군이 현지 치안 상황과 반군들의 활동 동향, 교전 가능성 등을 사전에 정밀히 파악해 이에 따른 주도면밀한 작전·군수지원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그리고 내전 상황이 점차 악화하는데도 수수방관하다가 우리 장병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허겁지겁 일본군에 손을 내민 것이다. 한국에 탄약을 빌려준 일본군도 우리처럼 공병 위주의 비전투부대지만 탄약 비축분을 충분히 확보해 놓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군의 무능과 판단착오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국방부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확률이 1%인 상황도 있고 0.1%일 때도 있는데 어떻게 다 대비하면서 사느냐”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 군은 순수한 군사적 판단에서도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지만 정무적 판단 역시 무능함을 노출했다. 일본이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군수물자도 아닌 실탄을 공급받는 것은 실로 중대한 문제인데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는 단순히 군의 판단착오를 넘어선다. 이런 민감한 문제는 대령급의 현지 부대장 판단에 의존할 일도 아니고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일본이 총리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한국군에 대한 실탄 지원 문제를 논의하고 뒤에 관방장관 명의의 담화문까지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사안은 우리 정부 외교·안보 라인 책임자들의 안이함과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일본이 한국군에 대한 실탄 제공을 적극적 평화주의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도록 한국이 스스로 멍석을 깔아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일본군의 무기·탄약 제공 국가 1호’로 등장하면서 일본의 ‘홍보대사’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으니 참으로 창피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번 한빛부대 실탄 차입 사건은 그냥 어물쩍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군의 초기 판단착오에서부터 시작해 실탄을 지원받게 된 정확한 경위, 구멍 뚫린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면밀히 점검해 관련자들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만날 안보·외교 분야의 성과를 자화자찬하더니 정작 중요한 군사·외교 문제에서는 극도의 무능함을 노출하고 있으니 참으로 실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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