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소득세 과표 조정, 증세 물꼬 삼아야 |
여야가 30일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기준을 지금의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추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한다. 과표구간을 낮추면 증세 효과가 있다.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를 민주당이 받아들이고 민주당 안대로 과표기준을 낮추기로 한 것이어서 개운한 맛은 덜하다. 그럼에도 부자증세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실현됐다는 의미는 있다. 여야는 법인세도 최저세율을 16%에서 1%포인트 올리는 선에서 소폭 인상하기로 했다.
현행 소득세 과표구간은 기형적인 측면이 있어 조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여야는 2011년 말 총선을 앞두고 급작스레 최고세율을 기존의 35%에서 38%로 올리는 대신 그 적용대상으로 3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했다. 그런데 최고세율 구간과 그 아래 35% 세율 적용 구간(8800만원 초과) 사이가 너무 많이 벌어져 논란이 계속됐다. 연봉 9000만원인 사람이 2억9000만원 소득자와 똑같은 세율을 적용받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여야는 과표구간 조정에 그치지 않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합리적인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내년도 복지 예산이 100조원을 넘고 국가채무는 5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1억5000만원으로 낮추더라도 연간 추가되는 세수는 7000억원에 불과하다고 하니 곳간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가계부에서 앞으로 5년간 세출 절감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모두 135조원의 복지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허망한 꿈으로 드러났다. 올해 세수는 목표보다 15조원 가까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돈 쓸 곳은 많은데 돈 나올 구석은 없어 세수 부족은 올해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나와 있는 2014년 흑자재정 계획도 이미 물거품이 됐다고 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에 비해 5%포인트나 낮은 조세부담률, 10%포인트나 낮은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지출 비중을 고려할 때 직접 증세 없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여름 깃털을 뽑으려다 반발을 산 경험으로 인해 증세 논의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속상해한 까닭은 세부담 증가 자체보다도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그대로 두고 자신들을 먼저 겨냥한 데 있다. 중산층은 복지증세도 점진적·단계적이라면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과표구간 조정에 더해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나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법인세율 인상 등 직접세 중심의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