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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감동도 비전도 없는 ‘불통 회견’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으로 6일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집권 2년차 국정 운영 구상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회견의 상당 부분을 경제 분야에 할애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나 구상을 밝혔다기보다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특히 회견을 계기로 소통의 전기를 마련해달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회견이었다.
이번 회견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미흡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질문을 미리 파악한 듯 줄곧 메모를 보며 답변했다. 청와대는 사전에 질문 내용을 통째로 입수해 답변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 각본에 따른 이런 회견은 기자회견의 형식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대통령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싶어하는 국민 바람에도 어긋난다. 참모들이 써준 답변지를 줄줄 읽는 대통령한테서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신념을 읽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이 회견에서 소통에 대한 그간의 국민적 요구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박 대통령은 “기계적 만남이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국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만이 진정한 소통이 된다. 이는 소통 상대를 자기 편할 대로 고르겠다는 독단이요 전횡이다.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실질적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특검 요구는 재판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거부했고,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 논의는 지난 연말의 1차 입법으로 완료됐다고 못박았다. 이런 접근법은 지난 1년간 국정원 사태를 눈덩이처럼 키워온 무책임한 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겠다는 게 눈에 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킨다. 목표지향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자칫 성장률 4%, 국민소득 4만달러 등 계획된 수치 달성에 매달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정책을 추진할 우려가 있다.
경제혁신을 위한 ‘3대 추진 전략’도 우리 경제의 큰 흐름을 바로잡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것들이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 공공부문 개혁을 화두로 제시했는데, 이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성장률 하락이나 분배 악화 등을 개선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경제 민주화 등 우리 경제의 토대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북한에 ‘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을 뿐 종전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원론적인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복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앞세움으로써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으니, 그것이라도 제대로 실현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박 대통령의 회견은 새해를 맞아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신년 회견의 취지에는 크게 미흡했다.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정책과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려 들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자세도, 대선 때 자신을 찍지 않은 48%의 국민을 포용하려는 아량도 없었다. 한마디로 감동도 비전도 없는 동문서답식 회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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