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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 금융계좌 정보 교환 철저히 대비해야 |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납세자의 금융계좌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조약을 5월 말까지 맺기로 합의하고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두 나라 조세당국은 역외탈세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나 진출 기업들이 막연한 공포감으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등으로 일시적 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금융 비밀주의를 차단하고 역외탈세에 대한 국제공조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2010년 ‘해외금융계좌납세순응법’(FATCA)을 도입했다. 두 나라 간 조세조약은 이 법을 바탕으로 한다. 조약은 이르면 7월부터 발효될 예정인데, 국내에 사는 미국 국적의 개인과 기업보다는 재미동포와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금융계좌 신고 범위와 대상이 매우 넓어진다. 미국에서 한해 10달러 이상의 이자소득이 있는 거주자는 국내에 운용하는 금융계좌를 모두 신고해야 한다. 신고 대상 계좌의 기준은 개인의 경우 잔액 5만달러, 법인은 25만달러 이상이다. 신고하지 않고 적발된 경우에는 금융소득의 30%까지 가산세를 물고,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 등 형사처벌도 받게 된다. 신고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금융회사에까지 적용된다.
조약 발효 전에 국내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 또한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현행 국내 제도는 증권계좌를 포함한 금융계좌의 전체 평가액이 10억원을 넘는 경우에만 신고 의무가 있다. 또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잔액의 10% 한도 안에서 과태료만 부과하는 등 처벌도 가볍다.
미국 조세당국에 넘어가는 계좌정보의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금융회사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고객정보를 미국으로 가져가 위탁처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이름으로 된 금융계좌는 모두 미 조세당국에 자동으로 넘어간다. 만약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연 누가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 사고 예방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두 나라 금융당국의 합의도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금융계좌정보 교환은 역외탈세 방지에 큰 도움을 주지만 선의의 피해자도 나올 수 있다. 국세청이 재외공관 등을 통해 재미동포에게 제도의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만약 이중과세와 같은 불이익을 받을 소지가 있다면 미국 조세당국과 협의해 조약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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