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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 외교’ |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냉철한 판단과 올바른 방향 설정, 치밀한 실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든 게 뒤엉켜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일본과의 관계다. 25일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과정 자체가 복잡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 회담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4~25일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동안 ‘미국 주최로’ 열린다. 의제도 최대 쟁점인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빠지고 ‘북핵 및 핵 비확산 문제’로 제한됐다. 자칫하면 이번 회담을 과거사 문제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일본 쪽의 들러리가 될 수 있는 구도다.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장급 회의를 열기 위한 협의가 진행중이라고 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대중국 압박 공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박 대통령은 서둘러 24일 새벽 중국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한-일 과거사 갈등을 잠재우고 대중국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일본에 우리 정부가 동조한 모양새는 바뀌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과 관련한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 나라들은 이번 회의 기간에 대러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이들과 발걸음을 맞춰야 할 이유는 없다. 크림공화국 합병을 러시아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게다가 러시아는 한반도 관련 사안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협력자가 될 수 있다. ‘북핵 및 핵 비확산 문제’ 논의가 6자회담 재개 노력과 충돌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미-일 정상회담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이면서 지구촌의 주요 강국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네 나라와의 관계 설정이 모두 만만치 않다. 가장 시급한 일은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일본과 중국의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펴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하는 노력은 한-미-일 정상회담과 관계없이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일본이 위안부와 역사 왜곡 문제 등에서 실질적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관계 개선은 어렵다.
박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 이은 독일 방문에서 통일 관련 행보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통일 문제가 국내 정치의 수단이 돼선 안 되지만, 통일에 우호적인 국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도 외교는 자주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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