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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잇단 아동학대, 집안문제 아닌 끔찍한 범죄다 |
경북 칠곡에서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새엄마와 딸을 학대한 친아버지에게 11일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울산에서도 같은 혐의를 받은 새엄마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두 사건은 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이에게 가해진 지속적 학대와 폭력의 결과였다. 그 잔혹함과 비인간성에 경악하고 공분하지 않을 수 없다. 엄벌하는 것 못지않게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칠곡의 비극을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피해 어린이와 그 언니의 몸에 난 상처를 보다 못한 담임교사들이 보건복지콜센터 등에 학대 신고를 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부모를 상대로 조사를 하기도 했다. 피해 어린이의 언니가 경찰 지구대에 직접 신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해자인 부모의 해명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거나 겁에 질린 아이가 말을 바꾸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다. 여덟 살 어린이의 죽음을 나쁜 부모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학대를 받은 어린이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기까지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학대 사실의 확인과 보호·격리를 서둘러야 할 이유다. 정작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0년 9199건에서 2013년 1만3706건으로 급증했지만, 응급조처를 취해야 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50곳뿐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신고를 받고 바로 나가도 반나절이 걸린다. 신고 건수의 절반 훨씬 넘게 아동학대로 판정받지만, 피해 어린이를 긴급하게 격리·보호할 시설과 전문 상담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친권과 양육권에 막혀 3일간의 단기보호가 고작이다. 계속 격리하려면 자치단체장에게 장기보호를 요청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막을 사회안전망을 갖추자면 시설·인력의 인프라 확충과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정부와 여야는 뒤늦게 관련 예산의 우선 배정, 시·군별 아동보호전문기관 설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만시지탄이다.
아동학대는 법과 제도가 없어서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부모가 어린이를 마음대로 해도 되는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나, 체벌을 훈육의 방식으로 용인하는 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사라지기 힘들다.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의 87%는 가정에서 발생하고, 84%는 친부모를 포함한 부모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한다. 그렇게 벌어진 아동학대로 많게는 한 해 10명 넘는 어린이가 숨졌다. 아동학대가 ‘남의 집 문제’나 ‘계모의 악행’이 아니라 끔찍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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