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9 19:48
수정 : 2005.09.09 19:48
사설
대법원이 어제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전라북도의 학교 급식조례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 조례가 외국 제품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세계무역기구 협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조례 제정을 반대해 온 정부 쪽 편을 들어준 것이다.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쓰자는 운동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동시에 우리 농산물의 활로도 넓히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전북말고도 경남·경기·서울·충북 등 여러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들이 같은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또 같은 규정을 담은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지나치게 경직된 것이다.
학교 급식에 자국 농산물을 쓰려는 움직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연방 학교급식법은 최대한 미국 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하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 규정을 두고 있다. 또 정부 지원을 받아 민간기관이 급식용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을 정부 조달로 보면 통상 마찰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할 근거가 되는 세계무역기구 판례도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학교 급식용 조달을 정부 조달 협상 대상에서 뺀 상태여서 마찰의 소지는 더욱 적다.
실제 통상 마찰이 빚어지면 세계무역기구에서 어떤 판정이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대응 논리를 개발할 여지가 충분한데도 지레 포기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학교 급식조례 제정 운동 단체들이, 문제는 세계무역기구 규정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비판하는 연유도 여기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질좋은 우리 농산물을 공급할 방법을 찾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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