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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7 18:37 수정 : 2014.04.28 15:38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정 총리가 사고예방과 초동대처, 수습과정의 문제점 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수색·구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아직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 남아 있을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생사조차 모르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가 덜컥 사의 표명부터 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이니 그 무능함에 대해선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리와 장관들이 당장 사퇴하라는 게 여론의 핵심 요구는 아니었다. 야당도 총리 등의 퇴진을 요구한 바 없다. 정부의 책임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사고 수습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사퇴 수리 시기를 사고 수습 이후로 미룬 만큼, 정 총리는 마지막 1명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수색과 구조에 전력투구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정 총리는 “제가 자리를 지킴으로써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손에 국면전환용 카드를 쥐여주기 위해 사퇴를 결행했다고 실토한 셈이다. 이 상황에서도 사고 수습이나 국민 안위보다 대통령의 부담을 먼저 헤아리는 총리의 그 ‘충정’이 참으로 놀랍다. 청와대와 조율한 기자회견이라고 하니 정 총리의 사퇴는 청와대의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 대통령 쪽으로 향하는 비판 여론의 화살을 차단할 목적으로 총리 사퇴 카드를 기획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 총리의 거취 표명이 박 대통령을 책임론의 불길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탄용 사퇴’가 돼선 안 된다. 사실이라면 국민이 저급한 정치쇼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까닭은 제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1월7일 성탄절 항공기 테러미수 사건 관련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와 너무도 대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국민은 지금껏 대통령으로부터 그 흔한 ‘책임 통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있다. 송구하다는 사과의 말도, 부덕의 소치란 의례적 수사도 대통령의 입에선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선장을 살인자로 낙인찍고 관료들의 책임을 질책하는 목소리만이 준엄했을 뿐이다. ‘책임회피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박 대통령과 도마뱀 꼬리 자르듯 2차장을 사퇴시키고 자리를 보전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너무도 닮았다.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이번 사건은 총리의 ‘대리사과’나 ‘대리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다. 헌법상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은 따로 있다. 대통령이 끝내 책임을 외면한다면 세월호 선장과 박 대통령의 태도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세간의 여론은 더욱 높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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