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2 21:18
수정 : 2005.09.12 21:20
사설
삼성이 1997년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사 사장이 30억원의 ‘배달사고’를 낸 사실이 밝혀졌다.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돈 앞에서는 친인척끼리의 의리나 인정도 소용 없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추악한 사건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홍 전 사장에게 뒤통수를 맞은 삼성 쪽의 심경이 어떨까 궁금증도 든다.
하지만 이 사건이 지니는 중요성은 가족간 배신 차원을 떠난다. 홍 전 사장이 정치권에 대한 삼성의 자금 창구 구실을 했다는 이른바 ‘엑스파일’ 내용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물증이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엑스파일 사건 수사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잡은 셈이다.
이번 사건은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며 또한번 국제적 망신을 안겨줬다. 홍 전 사장은 아직도 주미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중간에서 남의 돈이나 가로채는 한국 대사를 국제사회가 어떤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가 후임자 부임 때까지 계속 대사직을 수행하는 것은 더 큰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뿐이다. 홍 전 사장은 즉시 귀국해 진실을 밝히고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옳다.
검찰이 보광그룹 탈세 사건 수사 당시 배달사고 부분을 어물쩍 봐주고 넘어간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시 검찰이 30억원의 출처가 어디인지,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을 받아 얼마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착복했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냈다면 이미 그 때 ‘정-경-언 유착’의 실상이 상당 부분 드러났을 터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친족간의 횡령은 친고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검찰은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진상 규명에 결코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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