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13 20:44 수정 : 2005.09.13 20:44

사설

지난 11일 작고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유지가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스님의 법구는 어제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 옮겨졌다. 그곳에 안치된 게 아니라 학생들의 연구용으로 제공됐다. 이제 여느 스님처럼 장엄한 다비 절차가 아니라, 의과 생도들의 칼끝에 맡겨졌다. 종단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불교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4대)이 인연에 따라 모여 이루어지는 것을 ‘생’, 4대가 흩어지는 것을 ‘사’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불가에선 스님의 주검을 불에 태워 본래의 모습, 곧 4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런 장례 절차가 다비식이다. 다비식은 스님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없음에서 없음으로 돌아가는 생사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절차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비식은 스님의 사리를 수습하는 과정으로 이해됐다. 사리의 많고 적음은 스님의 법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됐다. 문도들도 스승의 법구에서 가르침보다는 법력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했다. 때문에 다비식은 생명의 본래 모습을 상기시켜 서로 하나됨을 일깨우는 기능을 잃었다.

법장 스님이 1994년 생명나눔 실천본부를 결성하면서 장기와 주검 기증을 서약한 것은 이런 불교계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스님은 온몸을 내줌으로써 생명이란 모두 서로 기대어 탄생하고 유지되며, 결국 하나임을 알리려 했다. 그리하여 생명에게 생명을 전하는 첫 사례가 됐다.

스님은 열반송에서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 바랑’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상기시켰다. 나눌 때 더 풍부해진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엔 장기이식 대기자가 1만3000명이나 있지만 한 해 1600명만 이식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고 한다. 꼭 기억하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