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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폭우에 멈춘 고리원전, 불안하고 아찔하다 |
부산 일대에 25일 시간당 최고 130㎜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 2호기의 가동을 이날 오후 중단했다. 비상사태 때 현장대응을 총괄해야 할 한수원 고리본부 건물도 침수 피해로 전기설비가 이틀째 고장 난 상태다. 어떠한 외부 충격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할 원전이 이처럼 비 피해에 취약하다니 아찔하다.
국내에서 폭우로 원전 가동이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수원 쪽 설명으로는,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펌프와 제어장치가 있는 건물에 빗물이 너무 많이 유입됨에 따라 고리 2호기의 설비안전을 위해 수동으로 정지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뜻이다. 한수원은 배수와 자체 안전점검을 거친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고리 2호기를 다시 가동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고리 2호기는 올해로 운영 32년째를 맞은 국내의 대표적인 노후원전이며, 방호·방재 대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가동 중단의 원인이 취수장치의 침수라는 점을 예사롭지 않게 본다. 비록 기록적인 폭우라고 하지만 호우 특보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원전 설비의 일부가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겼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원전에서 터빈을 가동시키는 증기를 냉각시키려면 취수장치가 쉼 없이 바닷물을 끌어들여 공급해야 한다. 그래서 갑작스런 재해나 내부 설비의 고장 때문에 갑자기 가동을 멈출 때가 가장 위험하며 고리원전처럼 노후설비일수록 그 가능성은 커진다. 더구나 원전처럼 대용량 발전소는 단 1기라도 예고 없이 가동을 멈춰버리면 국내 전체 전력계통망 운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정부와 한수원은 원자력발전소의 자연재해 대비책을 강화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고리 2호기의 경우에도 방수벽 등을 강화해서 각종 재해에 더욱 안전해졌다고 자랑해온 발전소다. 그러나 이번 침수 피해와 가동 중단 사태로 이런 자랑이 허세가 되어버렸다.
반경 30㎞ 안에 3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사는 곳에 자리잡은 원전이 크고 작은 사고에다 폭우도 견디지 못한다니 국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번 피해의 정도와 원인 분석은 한수원에 맡길 게 아니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 더 철저한 안전 보장과 국민 신뢰를 위해서는 민관 합동의 공동조사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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