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선거 때 정치개입이 선거법 위반 아니라니 |
국가정보원 직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2012년 대통령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11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정치개입의 국가정보원법 위반은 유죄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한 결과다. 댓글과 트위터로 정치에 개입했고 그 상당수가 선거 때 선거 관련 내용인데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니 참으로 이상한 판결이다.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정치 판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법원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한 것은 당연하다. 어떤 형태로든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방했다면 정치관여에 해당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도 직원들에게 강제된 업무상 지시이므로 정치관여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따른 댓글·트위터 활동이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그 근거로 내세운 논리는 궁색하다. 재판부는 ‘선거 때 정치관여가 당연히 선거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선거운동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능동적·계획적 행위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법정에서 인정된 증거만으로는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지시했다거나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활동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상식과 동떨어진 것이다. 검찰 주장대로 모든 국정이 선거로 수렴되는 선거 때의 정치관여 행위는 특정 후보자의 유불리로 이어지는 선거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대선 직전 조직을 확충했고, 댓글·트위터 활동도 대선 시기에 집중됐다. 그 상당수가 야당과 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인데도 선거운동이 아니라면 ‘눈 감고 아웅’ 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이번 재판은 시작 전부터 국정원의 조직적인 범행 은폐로 왜곡돼온 터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재판에서도 명백한 증거조차 부인하는 등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결과 법정에서 채택된 증거도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을 뻔히 방치하다 이제 와 증거 부족으로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으니 수긍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지적한 대로 국정원의 여론조작 행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깨뜨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 범죄다. 선거개입은 물론 정치관여 행위도 엄벌해야 마땅하다. 어중간한 절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