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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노동의 긴급과제, ‘비정규직 덫’ 해소 |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면 ‘덫’에 걸린 것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운 노동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별로 실효성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이시디가 16개 회원국의 지난해 고용통계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과거 이동 경로를 추적해 비교했더니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비정규직 채용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율을 보면, 한국이 22.4%로 회원국 평균인 53.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은 비정규직 3년 뒤 실직한 노동자의 비율이 26.7%로, 정규직 전환 비율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오이시디 평균은 비정규직 3년 뒤의 실직 비율이 16.9%로 정규직 전환 비율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정리하면 이렇다. 대부분의 오이시디 회원국에서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면 절반 이상이 3년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 구실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의 22.4%만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77.6%는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거나 실직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오이시디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의 비정규직은 열악한 일자리의 덫에 갇힐 위험이 높다”며 “심각하게 분절되어 있는 노동시장은 불평등과 차별을 심화시켜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권고다.
정부도 비정규직 고용의 남용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확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2007년부터 기간제 보호법을 시행하는 등 여러 가지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지금까지 결과로만 보면 성과가 매우 미흡하다.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변죽만 울린 탓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별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숫자 맞추기’식 고용정책만 펴고 있다. 정부 정책은 단지 일자리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실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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