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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7 18:36 수정 : 2014.10.07 18:36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의 개헌 논의에 공개적으로 급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개헌 발의권이 있는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동안 개헌을 두고 했던 발언을 되짚어 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선 공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1월6일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치쇄신 관련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개헌 논의’를 넘어 ‘개헌 추진’을 약속한 것이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하거나 번복하려면 그럴 만한 사정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정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기색조차 없다.

개헌 봉쇄의 이유로 경제 살리기를 꼽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는 어느 한순간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문제다. 경제를 이유로 든다면 개헌 논의는 영영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이던 2008년엔 “개헌 논의 시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때는 개헌 논의가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됐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을 원하지 않는다면 구차하게 경제를 핑계로 댈 게 아니라 생각이 바뀌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당당한 태도다.

발언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경제 살리기에 우선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상 ‘개헌 논의 금지령’에 가깝다. ‘친박’ 의원들이 일제히 ‘개헌 논의 시기상조론’을 제기한 것은 대통령의 지침이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이 뜻을 같이하면 개헌을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이 있는 국회의 개헌 논의를 틀어막는 것이야말로 삼권분립을 침해하는 행위다.

개헌 논의는 무슨 성역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절차에 따라 논의할 수 있는 정치 사안이다.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다고 국회의 논의마저 봉쇄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러니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여당 내부에서조차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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