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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년 허비한 세월호 진상규명, 더 늦춰선 안 된다 |
벌써 반년이다. 그날의 놀랍고 황망하고 비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때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잊지 않겠노라 주먹을 쥐었던 결기에 견주자니 지금의 일상은 너무나 안온해 부끄러울 지경이다. 6개월이 지나도록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못한 현실이 참담하다. 피붙이를 잃은 유족들과 가까스로 사경을 헤치고 나온 생존자들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나날이었을까.
실효성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유족들의 요구에 ‘밝혀질 건 다 밝혀졌다’느니 ‘이제 경제를 생각하자’느니 온갖 논리로 딴죽을 거는 세력들이 여전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진상규명의 첫 단추인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세월호 항적도가 이제야 겨우 완성됐다. 그것도 유족들이 직접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로그데이터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하는 등 고군분투한 결과다. 해군 레이더가 탐지한 항적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것 이외에 급변침이 또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새로운 사실들이 들춰지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가 함구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상황보고 내용이 지극히 일부분이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규제완화와 관련해서도, 여객선 선령 기준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할 당시 ‘안전기준을 강화하자’는 한국선급의 의견을 국토해양부가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존기간이 지나 사라질 수도 있었던 항적 관련 자료를 유족들이 증거보전 신청으로 확보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정부기관 어느 한 곳도 급변침 직전 ‘사라진 29초’의 항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규명의 임무를 부여받은 검찰과 감사원도 꼬리 자르기식 책임 묻기에만 급급했을 뿐,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과 구조 실패 경위 등에 대한 총체적인 조명에는 애초 무감각했거나 능력 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는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에 유족 참여를 보장해야 할 이유를 새삼 증명한다.
부실한 진상규명은 참다운 교훈을 이끌어낼 수 없다. 세월호 침몰 이후 8월31일까지 일어난 해양 선박사고(341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건 늘었다는 국감 자료가 말해주는 게 무엇인지 곱씹어볼 때다. 유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세월호특별법을 하루빨리 마련해 본격적인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한다. 혈육을 잃은 이웃의 통한을 헤아릴 한 줌의 인간성이 우리에게 있다면, 반년을 허비한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호진 프란치스코 “세월호와 같은 희생자 없게 우리 손에서 끊어야”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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