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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능 오류’ 파문, 신속한 피해 구제가 우선이다 |
사상 처음으로 16일 법원 판결을 통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의 오류가 인정됐다. 과거에도 수능 문제의 정답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소송으로 비화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았다. 장기간의 소송을 거치면 설사 뒤늦게 오류가 인정되더라도 피해 학생들의 ‘억울한 시간’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 논란이 불거진 직후 신속한 대처가 요구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온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는 말로도 모자란다. 이번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에서 보듯 명백한 오류가 있었는데도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약자인 수험생을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비유컨대 ‘가만히 있으라’며 뻗대는 정부의 오만이 엿보인다. 명색이 대학입시문제 출제기관인 평가원부터 1심 법원까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더라도 교과서에 실려 있으면 맞다’는 반지성적인 태도에 물들어 있었다는 점도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국가기관의 잘못과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으로 인해 점수가 깎인 수험생은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배정된 점수(3점)는 수능 한두 등급을 좌우한다고 하니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합격이나 하향 지원, 재수 등 저마다의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피해 학생들의 처지에서 남은 과제를 신속히 풀어가는 일이다. 불이익을 바로잡기까지 또 시간이 걸리면 그들의 젊은 시절이 더 왜곡될 수 있다. 우선 판결 확정을 서둘러야 한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상고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이들이 무리하게 상고를 강행한다면 대법원이 신속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1·2심을 거치면서 1년 가까이 흘려보낸 것만도 아쉬움이 크다. 교육부는 불합격 피해를 본 학생들에 대한 구제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강구하기 바란다. 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개별 소송을 벌일 경우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들게 되고, 해당 문제가 불합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생긴다. 적절한 손해배상도 소송 없이 이뤄지는 게 좋다.
이런 과정이 순탄히 진행되지 않는다면, 피해 학생은 물론 그들과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국가는 정의를 구현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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