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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18 01:07 수정 : 2014.10.18 08:57

사 설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엿보기는 카카오톡 등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의료정보를 하루 2649건씩 받아봤던 것으로 1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영장도 없이 공문 한 장만으로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가 매일같이 대량으로 넘겨졌는데도 당사자에겐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오랫동안 버젓이 계속됐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의료정보 가운데는 본인이 밝히고 싶지 않을 진료내역과 내밀한 사생활에 관한 정보들이 허다하게 들어 있을 터이다. 일반적인 개인정보 이상으로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더 함부로 유출됐다. 법원 영장을 받아야만 하는 계좌추적이나 통신감청 건수가 각각 하루 953건과 6.8건이었다니, 의료정보는 더 쉽게 마구잡이로 넘겨진 셈이다.

수사기관과 공단 쪽은 적법 절차에 따랐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수사와 관련해 사실 조회나 보고 요구가 가능하도록 한 형사소송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규정, 수사에 필요하면 공공기관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이 그 근거라는 것이다. 이들 규정은 법원의 영장 등 최소한의 통제장치도 없이 쉽게 개인정보를 넘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허술하고 무책임한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른 개인정보도 이런 식으로 함부로 넘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게 ‘수사기관의 요청에 응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앞세워 가입자 정보를 넘겼던 포털 업체들은 이미 법원에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훨씬 민감한 진료기록 제공 역시 불법이 될 수 있다.

법 규정만 봐도, 수사기관에 대한 의료정보 제공이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런데도 건보공단은 지침까지 만들어 의료정보 제공에 적극 협조했다. 정보 제공의 사유도 남기지 않았고, 정보를 유출당한 당사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비슷한 일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이 2009년 이후 발부받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영장 35만건 가운데 당사자에게 통지된 것은 21만건에 그친다. 감청영장은 3건 중 1건꼴로 통지했을 뿐이다. 법 규정도 아랑곳하지 않은 직무태만이다.

‘사이버 사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당사자가 알지도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지금이라도 모든 개인정보의 제공은 엄격한 요건 아래 법원의 영장이 있을 때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절차와 통지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 수사 편의를 앞세워 정보인권을 팽개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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