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5 19:49
수정 : 2005.09.25 19:49
사설
국창 임방울 탄생 100돌을 맞아 오늘부터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열린다. 1905년에 태어나 6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는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불행한 시기를 고스란히 경험한 셈이다. 그는 나라 잃은 슬픔으로 청·장년기를 보낸 데 이어 광복 후 극심한 혼란과 동족상잔, 궁핍을 몸으로 겪었다. 그가 서민의 한이 배어 있는 정서를 처절한 계면조로 실어나르며 뭇사람의 심금을 울린 당대 최고의 소리꾼이 된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판소리와 같은 공연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현장적 즉흥성’이다. 임방울은 오랫동안 지켜오던 소리의 계통이나 법도에서 벗어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바뀌기 시작한 청중의 취향을 자신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줄 알았던 타고난 광대였다. 걸쭉한 육담과 투박한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의 빼어난 ‘아니리’는 가난하고 억울한 서민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집요한 노력의 결과였다. 후대 학자는 그를 가리켜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시골 장터나 강변 모래사장에서 서민의 말과 표정으로 그들의 한과 설움을 노래한 음유시인”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단순한 ‘명창’이 아니라 ‘국창’으로 불리는 이유다.
만년의 임방울은 여러 차례 공연 중에 피를 토하며 무대에서 쓰러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소리하는 사람이 소리를 안 하면 죽은 목숨”이라며 공연을 강행하곤 했다. 이런 처절한 예술혼은 웅장하고 호방한 가풍의 동편제를 습득한 뒤 애련한 계면조의 서편제 가풍을 뒤섞어 ‘임방울제’를 창출해 낸 데서도 드러난다. 그의 탄생 100돌을 맞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짜 예술은 단순한 기교나 겉치레 형식미가 아니라 몸과 혼을 던지는 예인정신에 있다는 진리를 새삼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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