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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벌 민원’까지 끼워넣은 ‘규제 기요틴 과제’ |
정부가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 114건을 확정하고 범정부적으로 폐지 또는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확정한 과제들은 사회·경제적 파급 영향이 클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대부분 기업 편향적인 성격이 강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갈등을 유발하고 국민 후생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14건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건의한 것들을 검토한 결과이다. 애초 153건이 들어왔는데, 소관부처가 존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한 경우 일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규제를 만들거나 집행하는 입법·행정기관의 의견보다 규제 대상인 이해집단의 요구를 더 중시했다는 얘기다. 규제는 필요하면 바꿀 수는 있다. 중복규제는 없애고 기술 발전 등에 따른 규제 여건의 변화도 수시로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엄밀한 검증도 없이 완화 일변도로 추진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규제는 말 그대로 규칙과 제도이며, 비용과 함께 편익도 있다. 따라서 규제개혁을 하려면 비용뿐 아니라 규제 공백 때 발생할 갈등이나 환경 훼손 같은 사회적 비용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한 규제완화는 위험이 뒤따른다. 1990년대 말에 겪은 외환위기, 4월의 세월호 참사가 그 생생한 증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모든 규제를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암 덩어리’로 매도하면서 단두대에 올리듯 단칼에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천박한 인식에서 나온 극단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까지 손댈 모양이다. 특히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 민주화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렇게 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이에 따른 경제력 집중 심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모험과 독립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할 벤처기업을 재벌의 그늘 아래서 키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소유·지배구조의 연결고리를 단순화하자는 지주회사 제도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무차별적인 규제완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규제완화가 곧바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전임 이명박 정부의 기업 친화적 규제개혁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묻고 싶다. 제대로 규제개혁을 하려면 국민 의견 수렴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단두대에 올라가야 할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비민주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한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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