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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지 공약 불이행이 지방재정 탓인가 |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 수요 증가에 따른 재정난 해결 방안으로 지방재정에 손을 대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26일 열린 올해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행 지방재정 지원체계와 관련해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보고 제도적 적폐가 있으면 과감히 개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말이 개혁이지 ‘증세 없는 복지’라는 원칙을 고집해 지방재정을 줄이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박 대통령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 지방재정은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이다. 이 두 가지는 중앙정부가 거둬들이는 만큼 형식상 국세 수입으로 잡히지만, 법률이 정한 비율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에 의무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재정 항목이다. 이런 성격의 재정 항목을 건드리려면, 정식으로 입법을 통해서 결정해야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지나가듯이 불쑥 거론할 일이 아니다. 만약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충분한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지방과의 세수 배분 방식과 비율을 바꾼다면 지자체 운영과 공교육 재정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당장 지자체와 시도 교육청의 거센 반발을 살 게 뻔하다.
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지방재정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배경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정부의 안이함과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국민 불만의 화살을 엉뚱한 데로 돌리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여론을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중앙이든 지방이든 재정 여건이 나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되지도 않을 ‘증세 없는 공약 이행’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과제 140가지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135조원의 ‘공약 가계부’를 발표했다. 이 엄청난 재원을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 모두 조달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재원조달 방안이 허언이 되어버렸고, 이 때문에 공약 이행도 흐지부지된 게 많다.
공약 가계부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으면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복지 공약 이행과 이를 위한 증세 논의를 거부한다면 차라리 대통령 스스로 약속 파기를 선언하고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는 게 낫다. 꼼수와 궤변은 사회적 혼란과 국민 저항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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