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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문치사’ 은폐 검사가 대법관일 순 없다 |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했던 검찰 수사팀의 검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국회에 제출된 대법관 임명동의안에도 빠져 있었다고 한다. 박 후보자가 일부러 누락시킨 게 아닌지 의심된다. 역사적 책임을 끝내 회피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박 후보자를 비롯한 검찰 수사팀은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씨를 물고문해 죽게 만든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로부터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받고도 수사를 더 진행하지 않은 채 애초 드러난 수사관 2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재수사에 들어간 뒤에도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벌어진 조직적인 사건 은폐와 조작에 대해선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책임자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무혐의 처리하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수사팀에 참여한 검사로서, 권력에 굴복해 국가폭력의 살인과 은폐·조작을 도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과거사위원회가 2009년 검찰의 사과를 촉구했음에도 박 후보자는 지금껏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인권 유린과 진실 왜곡으로 얼룩진 오욕의 역사를 반성할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대법관으로선 치명적인 결함이다. 대법원은 사법정의와 인권의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사법부가 나아갈 목표이자 방향”이라고 말하는 등 사법부 스스로 거듭 자임해온 터다. 박종철 사건과 같은 고문과 가혹행위,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허위자백과 사건 조작은 인권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국가범죄다. 이런 범죄에 눈감고도 반성조차 않는 이가 어떻게 최고법원의 법관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박 후보자는 박종철 사건 말고도 1992년 무고한 시민을 물고문한 혐의로 입건된 경찰관을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불구속 처리하기도 했다. 경찰이 피해 시민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이 있는데도 그리했으니, 박종철 사건 처리와 판박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사람이 대법관으로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후보자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 이런 인물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대법관으로 제청하고 임명 동의를 요청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도 마땅히 사과하고 이를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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