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9 21:36
수정 : 2005.09.29 21:36
사설
대법원이 과거 시국·공안 사건의 판결문을 수집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전국 주요 법원에 보냈다고 한다. 대법원이 판결문 수집에 들어간 것을 곧바로 과거사 청산 작업의 본격화로 해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의 말대로 “과거 사건 판결의 흐름을 살펴보는” 첫걸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 작업에 발목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허물 우려” “과거 시국·공안 사범에 대한 면죄부 구상” 따위의 딴죽걸기가 그것이다. 심지어 “법과 양심에 따라 법관이 내린 판결을 제3자가 다시 판단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사법부가 지나온 역사에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렸다면 지금 과거사 청산 문제를 논의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때로는 권력에 굴복하고, 때로는 스스로 야합함으로써 사법부가 군사독재의 공범 구실을 해온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고 잘못을 속죄하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는 출발점이다. ‘과거사를 반성하면 사법부의 권위가 허물어진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은 철저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사법부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때로는 감시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과거 판결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왜곡·조작된 사건들을 다시 철저히 살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관련 피해자들에 대해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권력과 야합해 왜곡된 판결에 개입한 법관들을 가려내는 일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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