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답답한 삼일절 경축사 |
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 한·일 두 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그래서 더욱 올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삼일절은 그해 들어 가장 먼저 열리는 경축일이라는 점도 있어 그동안에도 한 해의 국정, 그중에서도 특히 대일, 대북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북한·일본과 전혀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터였다.
한마디로, 올해 삼일절 기념사는 좋게 말해 원칙론의 되풀이이고, 나쁘게 말해 현안 문제를 풀어갈 전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답답함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실전 문제집을 들고 머리를 싸매도 시원찮을 판에 교과서만을 뒤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일본 문제에서 박 대통령은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를 바란다”며 일본에 대해 ‘선 역사 반성-후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그 전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했다. 오히려 올해는 이전에 없었던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시도’ 등의 표현을 추가하는 등 대일 비판의 강도가 지난해보다 세졌다.
박 대통령의 대일 인식이 원칙론에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원칙을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 하는 실천적 측면에서 보면 갑갑하기 그지없다. 반면, 미국과 중국, 일본은 과거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관계 개선을 촉구하거나 촉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최근 공개연설에서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일본을 두둔하고 한국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국과 일본은 지난해 2년 반 만에 정상회담을 재개한 데 이어 4월에는 4년 만에 안보대화를 할 예정이다. 한-일 간에도 역사 문제의 중요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른 문제를 전진시키는 창조적이고 실용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산가족 상봉, 스포츠·문화·예술 교류, 역사 공동연구, 철도 재개 등을 잡화점처럼 다시 늘어놨지만, 핵심은 신뢰프로세스를 말하면서도 신뢰를 만들지 못하는 데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인식만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런 얘기밖에 할 수 없도록 보좌하는 참모들의 책임이 더욱 크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