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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보선 승리, ‘성완종 수사’ 면죄부 아니다 |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조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는 (사퇴를) 못하겠다. (검찰 수사에서) 혐의가 나온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둘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성완종 사건이) 우리나라가 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고위공직자가 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받겠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더구나 ‘성완종 사건’의 핵심은 리스트에 오른 정권 실세 8명에 대한 수사다. 그런데 이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 없이 ‘깨끗한 나라’라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방향만 강조하니,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자든 정치인이든 혐의가 확인되기 전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건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병기 비서실장은 단순한 수사대상이 아니다. 검찰 수사를 사전에 알거나 경우에 따라선 지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지난 1년간 그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140여차례나 전화통화를 한 기록이 있다. 검찰이 경남기업 수사에 착수한 직후에도 이 실장은 수사 중단을 요청하는 성 전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검찰 수사에 관여하는 것은 어렵다고 (성 전 회장에게) 대답했다”고 말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사를 받는 기업인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과거 두 사람이 얼마나 끈끈한 관계였기에 그렇게 자주 전화통화를 하고 검찰 수사 착수 이후에도 연락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다. 혐의가 확인돼야 책임지겠다고 하면, 이미 총리직을 사퇴한 이완구 의원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혐의가 확인된다면 그때는 사법처리를 해야지 공직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건, 4·29 재보선 직후 국회에 출석해 당당하게 이런 발언을 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의 태도다. 재보선 이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개혁’만 강조했지, 측근들의 대거 연루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도, 사과도 없었다. 이 실장의 발언에선 재보선 승리 이후 자신감을 얻은 청와대의 오만함이 아른거린다. 이렇게 되면 검찰 수사의 끝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하다.
정부여당은 재보선 민심을 오판해선 안 된다. 국민은 현 정권에 성완종 사건의 면죄부를 준 게 아니다. 진실 규명의 엄정한 의지를 내보이려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연히 물러나서 수사를 받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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