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당이 9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세금 감면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낮춘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을 추가로 내리자는 게 한나라당 안의 뼈대다. 유류세도 내리고, 소주세율 인상 등이 담긴 정부의 세제 개편안도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 세수 부족으로 정부가 내년에 9조원어치의 적자 보전용 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상황에서 잘 납득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제안이다.한나라당 안대로 세금을 깎으면 내년에 나라가 끌어써야 할 빚은 18조원으로 늘어난다. 그동안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강조해온 한나라당이 오히려 빚을 늘릴 안을 내놓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지출을 줄일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은 구체적인 지출 삭감안부터 먼저 내놓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다.
한나라당의 세금 감면안이 고소득층과 소수 대기업을 위한 것임은 명백하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절반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소득세율 인하는 서민보다 고소득층에게 큰 혜택을 주는 것이다. 수익이 큰 대기업 221곳이 전체의 62%를 내는 법인세도 세율을 내리면 소수 대기업에 혜택이 쏠린다. 서민에게 돌아가는 감세 혜택이 적은데도, 한나라당이 세금 감면의 명분으로 서민부담 경감을 내세우는 것은 기만적이다.
세금을 효율적으로 써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세수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라 빚도 결국은 국민이 부담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수 부족도 한나라당이 지난해 이끈 감세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조세 형평성을 해치는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를 손질하는 등 세수기반 확충방안부터 논의하는 게 옳은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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