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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완종 대선자금’엔 눈감는 검찰의 ‘수사 태업’ |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를 소환 조사하고 불구속 기소 방침을 정한 뒤에는 열흘 넘게 별 움직임이 없다. 물밑에서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어야 마땅하지만, 되레 단서가 없어 난항이라거나 이쯤에서 수사를 멈춰야 할 형편이라는 말만 흘러나온다. 수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검찰의 수사 행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수사팀은 ‘성완종 리스트’ 가운데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지금껏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뇌물이나 불법정치자금 수사는 계좌추적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고 상식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과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의 경우는 수수 금액과 이유, 대략적인 시점이 드러나 있고, 증인과 전달자까지 있다. 당연히 자금 흐름을 샅샅이 살피는 게 수사의 출발점인데도 검찰은 미적대고만 있다. 돈이 전달됐을 법한 시기에 이들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동선이 겹치는지를 찾는 등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시간만 때우려는 핑계로 비칠 뿐이다. 홍 지사도 성 전 회장이 아닌 제3자를 통해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터다. 동선을 비교하거나 실체조차 의심스런 비밀장부를 찾는 일은 변죽만 울리는 것일 수 있다. 수사의 본류를 따라 제대로 찾아보려는 게 아니라 제자리를 맴돌며 괜히 맨땅만 쑤셔대는 형국이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 관계자 김아무개씨한테 2억원을 직접 건넸다’는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이 나왔는데도 전달자인 김씨를 불러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증거인멸을 방치하고 부추기는 행태로 의심받을 만하다. 검찰 쪽은 “김씨가 부인하지 못할 증거를 찾는 중이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지만, 이미 진술 내용이 다 알려진 터에 한달 넘게 김씨를 방치했으니 관련자들이 말을 맞추고 증거를 없앨 시간은 충분했다고 봐야 한다. 검찰의 늑장 압수수색이 수사 실패의 원인이었던 2010년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부러 봐주려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나 지체할 수는 없다.
홍 의원 등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에서 조직·자금·직능단체를 각각 총괄하는 핵심이었다. ‘살아있는 권력’이어서 대선자금 수사엔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머뭇대며 시간이 가기만 기다린다면 검찰은 구차하고 비굴하다는 손가락질을 영원히 면할 수 없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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