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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체된 정의, ‘이주노조 합법화’ |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25일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2005년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지방노동청의 노조설립 신고 반려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낸 지 10년 만에 이주노조가 합법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의 근로자에 해당하며,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이 노동3권 보장과 함께 국적·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노조 가입이 제한되지 않는 것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노동기본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대법원 말대로 이번 판결은 이미 확립된 국제기준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런 상식과 원칙이 실현되기까지 무려 8년4개월이 걸렸다. 대법원은 2007년 2월 이 사건이 상고된 뒤 주심 대법관이 세 명이나 바뀌는 동안 판결을 미뤄왔다. 특히 양창수 전 대법관은 임기 6년 내내 이 사건을 방치했다. 법리상 쟁점이 복잡하거나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정을 일부러 늦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사이 이주노조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간부들이 표적이 돼 잇따라 강제추방을 당했고, 임금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를 겪어도 단체교섭은커녕 항의조차 어려웠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그런 현실을 인권의 보루여야 할 대법원은 8년 넘게 외면했다. 정의 구현과 인권 보장의 사명 대신 정부와 기업의 현실적 이익을 더 앞세운 탓일 것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대법원은 더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를 단속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부의 태도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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